찬양 나를 내려놓습니다 — 말씀 앞에 내가 먼저 무너져야 하는 이유

나를 내려놓습니다. 이 고백 하나가 이 찬양의 전부입니다. 말씀 앞에 서면 내 판단이 먼저 무너져야 합니다. 내 의지가 먼저 내려놓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이 찬양이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찬양 제목은 선포입니다. 말씀 앞에 나는 무너져야 합니다. 기쁜 고백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고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내가 서 있던 자리가 비워져야 하나님이 들어오십니다. 이 찬양은 라합의 믿음에서 시작된 말씀 대본과 같은 주제를 노래합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가사에 담았습니다.

말씀 앞에 서면 나는 무너져야 합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던 날, 라합은 살아남았습니다. 라합이 특별히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경건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성벽을 믿었던 여리고 사람들은 성벽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말씀을 믿었던 라합은 살아남았습니다.

이 찬양은 그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세운 것들이 먼저 무너져야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말씀 앞에 나는 무너져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부인이고,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충돌할 때, 그 충돌의 자리에서 내가 먼저 내려앉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말씀이 기준이 될 때 비로소 믿음이 작동합니다.

라합의 믿음이 무엇이었는지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라합의 믿음 —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를 의지하지 않는 것을 읽어보세요.

나를 내려놓습니다 — 첫 고백

나를 내려놓습니다 / 이 손에 쥔 것들을 / 내 판단 내 의지 내 생각 / 주님 앞에 드립니다.

첫 절은 고백입니다. 이 손에 쥔 것들이 무엇입니까. 내 판단입니다. 내 의지입니다. 내 생각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손에 쥐고 삽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계획한 것. 내가 바라는 것. 그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이 찬양의 첫 고백입니다.

쥐고 있는 손을 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손에 쥔 것이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내가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첫 절이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크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 손을 여는 것이 믿음의 첫 동작입니다.

성벽은 무너집니다 — 내가 세운 것들이

성벽은 무너집니다 / 내가 세운 것들이 / 무너져 내릴 때에야 / 주님만 남아 계십니다.

두 번째 절은 선포입니다. 성벽은 무너집니다. 내가 세운 것들은 무너집니다. 이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이것은 해방입니다. 내가 세운 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에야 비로소 주님만 남아 계십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쌓습니다. 나의 계획. 나의 확신. 나의 방법. 그것들이 허물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가 내가 쌓아온 것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입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성벽이 무너질 때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에게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내가 의지하던 것이 없어지는 그 자리에서 주님만 남아 계십니다. 무너짐이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 주님을 의뢰합니다 / 십자가 다 이루신 그 자리 / 오늘도 서게 하옵소서.

코러스는 이 찬양의 핵심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반만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내 판단 반, 하나님 반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여 의뢰합니다.

서는 자리가 있습니다. 십자가 다 이루신 그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신 그 자리에 오늘도 서는 것입니다. 어제 그 자리에 섰다고 오늘 자동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도, 다시, 그 자리에 서게 하옵소서. 이것이 믿음의 일상입니다.

말씀이 내 생각과 충돌하는 자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말씀 VS 내 생각 — 에덴에서 시작된 가장 오래된 갈등을 읽어보세요.

나를 부인하는 것이 주님을 아는 것임을

나를 부인하는 것이 / 주님을 아는 것임을 / 아무것도 아닌 듯이 / 그저 주님만 붙드는 것임을.

브릿지는 이 찬양의 가장 깊은 고백입니다. 나를 부인하는 것이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부인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오해합니다. 나를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부인의 본질은 나를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이. 그저 주님만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내 방향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주님이 가시는 곳으로 걷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부인이고, 그것이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을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가득 차 있으면 주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없습니다.

이 찬양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찬양은 공연이 아닙니다. 이 찬양은 특히 그렇습니다. 나를 내려놓습니다, 라고 부르는 그 순간에 실제로 내려놓는 손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합니다, 라고 부르는 그 순간에 실제로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부르는 찬양은 고백이 아닙니다. 그 가사가 내 현실의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찬양입니다.

이 찬양을 부를 때 먼저 물어보십시오.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판단입니까. 내 계획입니까. 내 두려움입니까. 그것을 손에 쥔 채 이 찬양을 부르면 고백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자리에서 부를 때 이 찬양은 기도가 됩니다.

주님만 붙들겠습니다 / 주님만. 이 한 마디가 이 찬양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내가 세운 것들이 무너지고, 십자가 다 이루신 그 자리에 선 사람의 고백은 하나입니다. 주님만 붙들겠습니다. 힘들 때마다 이 찬양으로 돌아오십시오. 이 찬양이 오늘 당신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실과 말씀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현실을 믿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말씀을 영상으로 전하는 채널입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말씀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데 힘이 됩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https://www.youtube.com/channel/UCFLAekMG_p6_SfT1aCc19xA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광고 차단 알림

광고 클릭 제한을 초과하여 광고가 차단되었습니다.

단시간에 반복적인 광고 클릭은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며, IP가 수집되어 사이트 관리자가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