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울 때 하나님보다 폭풍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빗소리가 귀에 먼저 닿듯 — 형편이 덮쳐올수록 하나님이 점점 작아 보입니다. 폭풍보다 크신 분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 폭풍이 오면 폭풍이 더 크게 보입니다.
이것이 두려움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성경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합니다. 갈릴리 바다 그 밤, 단 한 마디에 폭풍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창조주보다 큰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보다 빗소리가 먼저 귀에 닿는 이유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하나님보다 형편을 먼저 봅니다. 의지로 막을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방식이 그렇습니다.
오늘 당신 앞에 무엇이 있습니까. 건강 검진 결과입니까. 끊어질 것 같은 관계입니까. 바닥난 통장입니까. 이름은 달라도 방식은 같습니다. 빗소리처럼 그것이 먼저 귀에 닿고, 눈에 들어오고, 점점 더 크게 자랍니다. 하나님이 작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크기가 문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선의 방향이 문제라고 말씀합니다. 형편에 먼저 닿은 눈이 두려움을 만듭니다. 창조주께 먼저 닿은 눈이 믿음을 만듭니다.
형편을 먼저 보면 두려움입니다. 창조주를 먼저 보면 믿음입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선의 문제입니다. 두려움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 앞에서 무엇을 먼저 보느냐는 —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눈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성경 안에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 그 밤입니다.
갈릴리 바다 그 밤 — 바람이 입을 다물었습니다
바람이 쏟아집니다. 파도가 높아집니다. 배가 뒤집힙니다. 물이 들어옵니다.
이 바다를 평생 알아온 두 손이 — 노를 내려놓았습니다.
“이분이 정말 하나님이시라면 — 왜 지금 주무십니까.”
두려울 때 하나님보다 형편이 먼저 보입니다. 폭풍이 덮쳐올 때 — 하나님이 주무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당신도 그렇습니까. 지금 이 말이 마음 안에서 올라오고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주무셨습니까.
예수님이 일어나셨습니다.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파도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바람이 — 입을 다물었습니다. 파도가 — 무릎을 꿇었습니다. 협상이 없었습니다. 과정이 없었습니다. 말씀하셨고, 멈췄습니다.
평생 이 바다를 알아온 어부들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폭풍이었습니다. 그 폭풍이 한 마디에 순종했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압니다. 만드신 분의 음성 앞에 순종하는 것은 —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이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이분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빗방울 하나도 그 손 밖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태초에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빛이 생겼습니다. 별을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바다에 경계를 그으셨습니다. 구름에 비를 명령하셨습니다.
빗방울 하나도 그 손 밖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죽음의 문 앞에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나오라. 나흘이 지난 나사로가 — 걸어 나왔습니다. 죽음도 그 음성을 거역하지 못했습니다.
창조주보다 큰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폭풍은 하나님을 압니다. 바람도 파도도 — 그 음성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폭풍이 멈춘 이유는 날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말씀하신 분이 그 자리에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만물을 붙드십니다. 별을 자리에 앉히신 분이 당신의 형편을 모르실 리 없습니다. 죽음의 문 앞에서 이름을 부르신 분이 지금 당신 앞에서 침묵하실 리 없습니다.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면 — 그 빗방울 하나하나가 그분의 손을 거쳐 내립니다. 당신 앞에 놓인 형편도 그 손 밖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오늘도 — 그 품 안에 있습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운 채로 창조주를 먼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것은 믿음이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람을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던 눈이 폭풍으로 돌아선 그 순간 — 발 아래가 내려앉았습니다.
같은 바다였습니다. 같은 폭풍이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 시선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봤을 때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바람을 봤을 때 그는 가라앉았습니다. 폭풍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이 향한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었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가 아닙니다. 폭풍 한복판에서 — 창조주를 먼저 바라보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두렵습니까. 형편이 너무 커서가 아닙니다. 눈이 창조주보다 형편에 먼저 닿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는 순간 다시 걸었던 것처럼 — 지금 이 순간 창조주를 먼저 보십시오.
평안은 맑은 하늘에서 오지 않습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에서 옵니다. 오늘 형편이 크게 보입니까. 창조주보다 큰 형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지금도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 음성은 갈릴리 바다에서만 들린 음성이 아닙니다. 빗방울 하나도 그 손 밖에서 떨어지지 않는 분이 — 지금 이 자리에도 계십니다.
두려울 때 이 기도가 당신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두렵습니다. 형편이 덮쳐옵니다. 저 혼자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잠잠하라 한 마디에 바람이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울 때 하나님을 먼저 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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