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악이 아닌 선악과를 먹인 1가지 이유

사탄은 왜 인간에게 악을 먹이지 않았을까요? 독을 먹였다면 훨씬 간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에게 먹인 것은 악이 아니라 선악과였습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게 하는 것. 얼핏 보면 좋은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창세기가 보여주는 선악과의 진짜 의미를 살펴봅니다.

선악과 — 악이 아닌 선악과를 먹인 이유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은 하나님과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시면 선하고, 악하다고 하시면 악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과 별개로 판단하는 자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흘러 아담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됨이었습니다.

사탄은 그 연결을 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영리했습니다. 악을 심으면 인간이 스스로 알아챕니다. 하지만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을 심으면 인간은 그것을 성장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은 좋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뱀은 하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다고. 그 말 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숨기고 계신 것이 있다는 암시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뒤 인간에게 생긴 가장 무서운 변화는 악해진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채 스스로 선악의 기준이 된 것입니다. 한 나라에 두 명의 대통령이 생긴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반드시 분열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별개로 선악을 판단하기 시작한 순간 그 관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선악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자리에서 나오는 선은 진짜 선이 아닙니다. 뿌리가 잘린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열매처럼 보여도 생명이 없습니다.

아담이 보여준 자기 판단의 시작

선악과를 먹은 직후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벗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벗은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 기준이 생겼습니다. 그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두려움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은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내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그때 아담이 한 대답이 선악과의 결과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주어서 먹었습니다.” 이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단순히 여자에게 책임을 넘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도 잘못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 여자를 주지 않으셨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제 인간이 하나님의 일까지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결과였습니다.

하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뱀이 주어서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책임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옳다는 판단이 먼저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 — 인간의 선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

그 모습은 가인에게서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가인은 정성껏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과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누가 봐도 가인의 제물이 더 값지고 좋아 보였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 수고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아벨의 양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내 수고가 아닌 은혜를 상징합니다.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은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신 땅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땅은 인간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결국 가인의 제물은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었고,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선한 의도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함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이후 인간에게서 나오는 선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뿌리가 하나님과 분리된 선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나는 옳은데, 왜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시는가? 그 분노가 결국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데까지 갔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선의 진짜 정체입니다. 내 선이 거절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공격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정확히 같은 사건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의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제거한 것입니다.

복음은 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 10장 3절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악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나의 선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을 더 선한 사람이 되는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착하게 살고, 더 많이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인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의를 세우려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더 착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의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선악과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노력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길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내 선이 하나님 앞에서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의를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말씀 vs 내 생각 — 에덴에서 시작된 가장 오래된 갈등

말씀 영상 채널 바로가기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광고 차단 알림

광고 클릭 제한을 초과하여 광고가 차단되었습니다.

단시간에 반복적인 광고 클릭은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며, IP가 수집되어 사이트 관리자가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