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이 명령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오래 참으려 했습니다. 정말로. 그런데 터졌습니다.

온유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상처를 줬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내 것을 먼저 챙겼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을수록 오히려 무거워집니다.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왜 이렇게 허전한가.

기도를 마쳐도 마음은 여전히 같은 자리입니다.

다짐하고 무너지고, 또 다짐하고 또 무너지는 반복이 지칩니다.

사랑하려 할수록 내 한계가 더 선명해집니다.

신앙생활 몇 년이 됐습니까.

처음보다 더 무겁습니다.

더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럴까 싶으십니까.

혹시 이런 생각 드십니까. 내가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 고린도전서 13장이 명령처럼 느껴지는 이유

고린도전서 13장을 몇 번이나 읽었습니까.

읽을 때마다 또 다짐합니다.

그런데 왜 또 같은 자리입니까.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7절을 읽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래 참으려 했는데 결국 터집니다.

온유하려 했는데 상처를 줍니다.

자기 유익을 버리려 했는데 어느새 내 것을 먼저 챙깁니다.

이 반복이 쌓이면 말씀이 짐이 됩니다.

더 열심히 읽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결론에 이릅니다.

나는 사랑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구나.

내가 부족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신앙이 힘든 거구나.

그 결론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방향의 문제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먼저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먼저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거울 앞에 서면 내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보일 때 말씀이 비로소 힘이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9절.

먼저가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가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이 반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더 깊은 이유가 궁금한 분은 신앙이 힘들 때 열심히 믿어도 허전한 3가지 이유를 참고하십시오.

세상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방향이 다릅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능동적인 활동이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은 기술이고, 노력이고, 훈련이다.

이 말은 인간의 사랑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내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도 그렇게 읽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목표로.

내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방향에서 옵니다.

세상의 사랑은 가치가 있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아름다우니 사랑하고, 착하니 사랑하고, 잘하니 사랑합니다.

조건이 맞으면 사랑하고, 조건이 틀리면 등을 돌립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랑 안에 있으면 항상 불안합니다.

내가 조건을 유지해야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하면 인정받고, 못하면 외면받는 그 구조.

그 구조가 신앙 안으로도 들어옵니다.

더 잘해야 하나님이 사랑해주실 것 같은 그 느낌.

그것이 율법의 신앙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반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치를 주십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생겨서 사랑하신 게 아닙니다.

그냥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구절에서 결정적인 단어는 아직입니다.

준비가 됐을 때 오신 게 아닙니다.

아직 죄인인 자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자격이 갖춰진 자에게 오신 게 아닙니다.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사랑받을 만해졌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내가 아직 그러지 못했을 때 먼저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 차이를 붙잡으면 고린도전서 13장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먼저 해주신 사랑을 보여주는 거울이었습니다.

이 선물을 믿을 때 신앙이 변합니다.

내가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십자가 —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선명한 증거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는 가장 긴 문장보다, 십자가 한 사건이 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게 아닙니다.

도망간 자를 위해 달리셨습니다.

배신한 자를 위해 달리셨습니다.

욕한 자를 위해 달리셨습니다.

죄인을 위해 달리셨습니다.

오래 참는 사랑이었습니다.

배신당해도 사랑했습니다.

도망가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그 사랑.

그것이 십자가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믿겠느냐.

이 질문이 방향을 바꿉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려 할수록 지칩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명령이 아닙니다.

채워진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받은 자가 비로소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 사랑이 내 안에 채워질 때 고린도전서 13장의 삶이 시작됩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알고 싶은 분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를 의지하지 않는 것을 참고하십시오.

성령의 기름이 채워질 때 그 삶이 가능해집니다. 율법의 짐을 내려놓고 성령의 기름 채우는 3가지 진리에서 이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시 읽으십시오.

이번엔 내가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읽으십시오.

그 사랑이 보이기 시작할 때 당신의 마음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났나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한일서 4장 7절.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의 가장 분명한 증거는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가 오늘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살아 역사하십니다.

오래 참으려다 지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당신이 지친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손을 놓으십시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이 말씀이 오늘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살아 역사하십니다.

은혜로 받는 믿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받은 줄로 믿어라 나사로 한나 에니아 3가지 사례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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