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줄로 믿어라 — 나사로, 한나, 에니아 3가지 사례로 보는 믿음의 감사

받은줄로 믿어라 — 이 찬양이 시작되는 자리는 형편이 나아진 자리가 아닙니다.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이 자리에서, 이미 받은 것처럼 드리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국악과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혼성 듀엣으로, 애절함에서 폭발적인 기쁨으로 올라가는 이 곡은 단순한 찬양이 아닙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고백하는 선포입니다. 이 찬양은 기다림의 찬양이 아닙니다. 아직 응답이 오지 않은 이 자리에서, 이미 응답받은 것처럼 고백하는 믿음의 찬양입니다. 형편이 현실을 말할 때, 말씀을 먼저 붙드는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찬양입니다.

받은줄로 믿어라 —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드린 감사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셨을 때,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있었습니다.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마르다는 말했습니다. 주님, 지금은 냄새가 나나이다. 그것이 당시의 형편이었습니다. 부패가 시작된 무덤 앞에서 아무도 살아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마르다도, 마리아도 — 모두가 형편을 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울었고,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자리는 절망의 자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형편을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아직 나사로가 살아 나오지 않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감사하셨습니다. 형편이 달라진 다음이 아닙니다. 감사가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선포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 한 마디가 실상이 되었습니다. 냄새가 나던 무덤에서 나사로가 걸어 나왔습니다. 감사가 먼저였고, 실상이 그 뒤를 따라왔습니다. 이것이 받은줄로 믿어라는 찬양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 —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의 실체

마가복음 11장 24절은 말씀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말씀에서 순서에 주목해야 합니다. 받은 줄로 믿는 것이 먼저입니다. 형편이 바뀐 다음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이 자리에서, 이미 받은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의 방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릴 때 형편을 먼저 봅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그대로 된다. 이것은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사람의 긍정적 사고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실상으로 붙드는 것입니다. 말씀이 현실보다 먼저인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말씀을 현실로 이루십니다. 현실을 먼저 보는 사람과 말씀을 먼저 보는 사람 — 그 시선의 차이가 믿음의 차이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문제는 기도의 횟수가 아니라 시선의 방향일 수 있습니다. 이 주제가 더 궁금하신 분은 현실을 믿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가도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형편이 그대로인 자리에서 드리는 찬양 — 한나와 에니아

한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아직 아들을 받기 전에, 제사장 엘리의 축복을 받은 직후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더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들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형편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말씀을 받은 그 순간, 그는 이미 받은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형편이 달라지기 전에 얼굴이 먼저 달라진 것입니다. 그것이 받은 줄로 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베드로가 에니아에게 말했을 때 에니아는 아직 누워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선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이것은 미래형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선포했습니다. 낫게 하시니 — 과거형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선포했고, 에니아는 곧 일어났습니다. 말씀이 먼저 선포되었고, 실상이 그 뒤를 따라왔습니다. 받은줄로 믿어라는 찬양은 바로 그 자리에서 드리는 찬양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라합의 믿음 —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를 의지하지 않는 것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국악과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애절함에서 기쁨으로

이 곡은 국악과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혼성 듀엣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애절합니다. 형편이 그대로인 이 자리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아직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의 무게가 선율 안에 담겨 있습니다. 국악의 깊은 울림이 그 애절함을 더욱 깊게 만들어줍니다. 우리 민족의 정서 안에 담긴 기다림과 간절함이 선율 속에 녹아 있습니다. 그 애절함은 포기가 아닙니다. 말씀을 붙들기 직전의 간절함입니다.

그러나 이 찬양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붙드는 순간, 선율이 달라집니다. 오케스트라가 함께 폭발적인 기쁨으로 올라갑니다. 애절함이 기쁨으로 바뀌는 그 순간이 이 곡의 절정입니다. 그것은 형편이 바뀐 순간이 아닙니다. 말씀을 받은 줄로 믿는 순간입니다. 그 믿음의 순간에 선율이 터집니다. 국악의 애절함과 오케스트라의 장엄함이 하나로 만나는 그 지점에서, 이 찬양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믿음의 고백이 됩니다.

받은줄로 믿어라 — 이 찬양을 드리는 자리에서

받은줄로 믿어라는 단순한 찬양 제목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포입니다. 형편을 바라보던 눈을 말씀으로 돌리는 결단입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셨던 그 자리, 한나가 얼굴에 수색이 없어진 그 자리, 에니아가 일어서기 전에 이미 낫게 하셨다는 선포를 들은 그 자리 — 그 자리에 지금 당신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형편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봅니다. 당신이 형편을 보고 있을 때와 말씀을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은 다릅니다. 아직 형편이 그대로라도 괜찮습니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 말씀을 붙들고 이 찬양을 드리십시오. 받은줄로 믿어라는 찬양이 이 자리에서 당신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아하그말씀 성경 채널https://www.youtube.com/channel/UCFLAekMG_p6_SfT1aCc19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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