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찬양을 부르다가 멈췄습니다.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오셨다는.
그 가사 한 줄에 그냥 멈췄습니다.
뭔가가 밀려왔습니다.
눈물인지 은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거기 서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찬양을 부르는데 갑자기 울어버린 경험.
왜 우는지도 모르겠는 그 순간.
멜로디가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감성이 약해서도 아닙니다.
진리가 내 안에 닿을 때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찬양을 감성으로 접근합니다.
좋은 멜로디, 아름다운 화음.
하지만 진짜 찬양은 진리에서 옵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는 그 사실이 닿을 때.
그때 무언가가 밀려옵니다.
이 찬양이 담고 있는 것은 그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찬양 — 자격 없는 자에게 먼저 오신 이유
“이 하나님의 사랑 찬양” 첫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격이 없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오셨습니다. 내가 부르기도 전에.
우리가 아는 사랑은 대부분 자격을 전제합니다.
잘하면 사랑받고, 못하면 멀어집니다.
착하면 인정받고, 실망시키면 등을 돌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 안에서도 자격을 쌓으려 합니다.
더 기도하고, 더 헌신하고, 더 열심히.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해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신앙이 무거워집니다.
기도를 안 하면 하나님이 멀어질 것 같습니다.
헌신을 못하면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노력에 달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이 율법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반대 방향에서 옵니다.
자격이 생겨서 오신 게 아닙니다.
자격이 전혀 없을 때 먼저 오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구절에서 결정적인 단어는 아직입니다.
준비가 된 자에게 오신 게 아닙니다.
아직 죄인인 자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자격이 갖춰진 자에게 오신 게 아닙니다.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찬양” 그 사실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자격이 없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이 찬양이 우리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입니다.
신앙이 힘들 때 이 방향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궁금한 분은 신앙이 힘들 때 열심히 믿어도 허전한 3가지 이유를 참고하십시오.
십자가 — 도망간 자를 위해 두 팔 벌리신 그 사랑
“이 하나님의 사랑 찬양”두 번째 가사입니다.
십자가였습니다.
도망간 자를 위해.
배신한 자를 위해.
그래도 두 팔을 벌리셨습니다.
짧은 가사입니다.
하지만 이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위해 달리신 게 아닙니다.
도망간 자를 위해 달리셨습니다.
배신한 자를 위해 달리셨습니다.
욕한 자를 위해 달리셨습니다.
죄인을 위해 달리셨습니다.
오래 참는 사랑이었습니다.
배신당해도 사랑했습니다.
도망가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말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
그것이 십자가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가 돌아오지 않아도.
두 팔을 벌리고 계셨습니다.
이 장면이 마음에 닿을 때 무언가가 밀려옵니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계산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은혜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감사가 물결처럼 밀려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닿은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알고 싶은 분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를 의지하지 않는 것을 참고하십시오.
감사가 물결처럼 밀려오는 이유
“이 하나님의 사랑 찬양” 후렴은 이렇습니다.
감사가 밀려옵니다. 물결처럼 깊은 곳에서.
왜 감사가 물결처럼 밀려옵니까.
내가 만들어낸 감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말했습니다.
사랑은 능동적인 활동이다.
사랑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사랑에 대한 통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반대입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은 사람에게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억지로 만들어내는 감사는 금방 지칩니다.
더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오히려 짐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닿을 때 감사는 저절로 옵니다.
물결처럼 밀려옵니다.
깊은 곳에서부터.
“이 하나님의 사랑 찬양”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습니다.
내가 파도를 만들기 전에 당신이 이미 바다였습니다.
내가 찬양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거기 계셨습니다.
내가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듣고 계셨습니다.
내가 손을 내밀기 전에 하나님의 손이 먼저 닿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감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파도는 내가 만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다이시기 때문에 파도가 옵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감사가 밀려옵니다.
은혜로 받는 믿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받은 줄로 믿어라 나사로 한나 에니아 3가지 사례를 참고하십시오.
이 찬양은 우리에게 더 잘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났나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한일서 4장 7절.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가장 분명한 증거는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감사가 밀려옵니다.
물결처럼 깊은 곳에서.
당신이 이 찬양을 부를 때 무언가가 밀려온다면.
그것은 당신의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닿은 것입니다.
자격이 없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오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 하나로 찬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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