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식-죄인이 의로워 지는 3가지 공통점 (없나이다)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 문 밖에 서 있던 문둥이 네 사람이 그 말을 처음 내뱉었습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자리에서 두려움을 안고 걸어갔다가,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기쁨 앞에서 그들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그런데 이 말이 단지 그날 사마리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읽으면, 복음을 만난 사람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보입니다. 모두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 — 갇힌 사마리아 성과 우리의 모습

사마리아 성을 바라보면 죄 아래 갇힌 우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 밖에는 아람 군대가 포위하고 있었고, 성 안에는 먹을 것이 바닥났습니다. 나가도 죽고, 남아 있어도 죽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스스로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 절망의 한복판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내일 이맘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내일이면 펼쳐질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장관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어쩌면 이것이 복음 앞에 선 우리의 마음인지 모릅니다. “하늘의 창을 내신들 나 같은 죄인이 어찌 의로워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 제 죄를 제가 아는데요. 어제도 죄를 지었고 오늘도 부족한데, 어떻게 저를 의롭다고 하십니까.” 내가 나를 보면 장관의 말이 맞습니다. 죄를 아는 내가 어떻게 나를 의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보다 내 죄를 더 잘 아시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장관을 통해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항복하러 갔는데 적군이 없었습니다

성문 밖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기 위해 걸었습니다. 싸우러 간 것이 아닙니다. 승리할 자신이 있어서 간 것도 아닙니다. 두려움을 안고, 어쩔 수 없어서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이상했습니다. 장막도 있고, 음식도 있고, 은과 금도 있는데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적군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문둥이 네 사람이 적군을 없앤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셨습니다. 항복하러 갔는데 항복할 적군이 없었습니다. 싸우려 한 것도 아닌데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말이 나옵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없나이다 — 복음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

성경을 읽다 보면 이상한 공통점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예수님 앞에 끌려왔습니다. 그녀의 죄를 사람들도 알았고, 여인 자신도 알았고, 무엇보다 예수님도 알고 계셨습니다. 군중이 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너를 정죄한 자가 어디 있느냐?” 여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주여, 없나이다.”

죄가 없나이다가 아닙니다. 정죄할 자가 없나이다였습니다. 죄를 숨긴 것이 아닙니다. 그 죄를 담당하실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죄를 모르셨던 것이 아닙니다. 다 아셨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아시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탕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모든 것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수없이 준비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그런데 아버지는 죄를 따지기도 전에 달려왔습니다.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가장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순간, 준비했던 그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값을 갚으려는 계산이 필요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 — 아시면서 없애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은 말씀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히브리서 9장 26절은 말씀합니다. “자기를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이사야 43장 25절은 말씀합니다. “나 곧 나는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미가 7장 19절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그리고 로마서 8장 1절은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몰라서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시면서 없애셨습니다. 내가 죄가 없어서 의롭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를 직접 지고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받으시고, 내가 치러야 할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적군이 없습니다. 정죄할 자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다시 죄를 위하여 드릴 제사도 없습니다. 내가 없앤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끝내셨습니다. 복음은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은혜는 내가 죄를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다 없애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받은 사람의 고백은 하나입니다. 주여, 없나이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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