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다 이루었다 — 히브리서 10장 14절, 단번에 영원히 온전케 하신 의

목차

  1. 다 이루었다 — 이 세 글자가 바꾼 것
  2. 내가 쌓은 의는 왜 모래성인가
  3. 그리스도가 이루신 의 — 영원한 반석
  4. 히브리서 10장 14절 — 단번에, 영원히
  5. 다 이루었다 — 이것이 찬양이 되는 이유
  6. 오늘 당신에게 남겨진 질문

죄의 씨로 태어난 나
행위로는 닿을 수 없는 의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린 나의 모든 노력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려 해도,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더 노력하면 될 것 같고, 더 거룩해지면 가까워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단 세 글자입니다.

“다 이루었다”

이 세 글자가 인류 역사를 둘로 나눴습니다. 십자가 이전과 십자가 이후로. 이 세 글자 안에 우리가 평생 붙들어야 할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합니다. 기도를 더 해야 할 것 같고, 더 거룩하게 살아야 할 것 같고, 헌신을 더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그 이유를 찾고, 히브리서 10장 14절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확인합니다.

다 이루었다 — 이 세 글자가 바꾼 것

요한복음 19장 30절입니다. 예수님은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복음 19장 30절

“다 이루었다”는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이 단어는 상업 문서에서 “완전히 지불되었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빚이 완전히 청산되었을 때 영수증에 찍는 도장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일부가 아닙니다. 전부입니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단 한 번의 선포로 영원히 완료된 것입니다.

내가 쌓은 의는 왜 모래성인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쌓으려 합니다. 선행을 쌓고, 기도를 쌓고, 봉사를 쌓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말합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고(이사야 64장 6절). 인간이 스스로 쌓는 의는 아무리 높이 쌓아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않습니다.

모래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해변에서 열심히 성을 쌓습니다. 정성을 들이고, 시간을 쏟습니다. 그러나 파도 한 번에 무너집니다. 내가 쌓는 의가 그렇습니다. 오늘 잘 살다가도 내일 무너집니다. 어제의 헌신이 오늘의 실패 앞에서 사라집니다.

이것이 율법 아래 사는 삶의 실체입니다. 더 잘해야 한다는 두려움, 부족하다는 죄책감, 끝없이 쌓아야 한다는 강박. 쌓으면 쌓을수록 더 무거워집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쳐 쓰러지는 것이 인간의 의가 도달하는 마지막 자리입니다. 율법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의 — 영원한 반석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의는 다릅니다.

로마서 5장 19절은 말합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고. 그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래성과 반석의 차이입니다. 내가 쌓은 것은 파도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의 실패가 이 반석을 깎아내리지 못합니다. 나의 연약함이 이 기초를 흔들지 못합니다.

반석 위에 선다는 것은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이 아닌 그분의 완성 위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더 잘해서 이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이미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완벽함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 엎드리는 그 중심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 — 단번에, 영원히

저가 한 번의 제사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장 14절

이 구절에는 두 개의 핵심 단어가 있습니다.

한 번. 예수님의 제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매년, 매일 제사를 드렸습니다. 죄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제사도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영원히. 이 온전함에는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오늘의 실패가 이 온전함을 취소하지 못합니다. 어제의 죄가 이 완성을 무효로 만들지 못합니다. 단번에, 영원히.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 이미 완료된 것입니다. 앞으로 온전케 하실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온전케 하셨습니다. 당신이 받아야 할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 이것이 찬양이 되는 이유

이 진리가 노래가 됩니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사라질 때, 내가 쌓아야 한다는 강박이 내려놓아질 때, “다 이루었다”는 그 말씀이 그냥 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고백이 됩니다.

죄의 씨로 태어난 나, 행위로는 닿을 수 없었던 그 의를, 그리스도가 단번에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찬양입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내가 모래성을 쌓으려다 지쳐버린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서는 노래입니다. 이미 받은 것을 받은 줄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남겨진 질문

당신은 지금 무엇을 쌓고 있습니까?

더 좋은 사람이 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더 기도하고, 더 헌신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합니까? 그 생각 자체가 모래성입니다. 내가 쌓을수록 오히려 무거워지는 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앞에 잠시 멈추십시오.

다 이루셨습니다. 이미. 단번에. 영원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 완성된 의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쌓은 모래성에서 내려와 그분이 이루신 것을 붙드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 이 한 마디가 당신의 삶의 기초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힘이 되셨다면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 주세요. 매주 말씀이 올라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FLAekMG_p6_SfT1aCc19xA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광고 차단 알림

광고 클릭 제한을 초과하여 광고가 차단되었습니다.

단시간에 반복적인 광고 클릭은 시스템에 의해 감지되며, IP가 수집되어 사이트 관리자가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