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복을 얻으려고 말씀 묵상을 하지 않습니다 — 시편 1편의 진짜 의미

말씀 묵상을 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솔직히 말씀이 그냥 글자로만 보인다는 분이 있습니다. QT 노트를 빠짐없이 채웠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분량이 부족한 걸까요? 방법이 틀린 걸까요?

시편 1편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면 답이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말씀 묵상으로 복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것을 뒤집어서 이해합니다. 말씀 묵상을 열심히 하면 복을 받는다고. 그래서 묵상을 복을 얻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그것이 묵상을 부담으로 만드는 뿌리입니다.

시편 1편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

시편 1편 1절과 2절을 그대로 읽어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핵심 단어가 있습니다. 즐거워하여. 복 있는 사람의 묵상은 의무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즐거움에서 시작됩니다. 묵상이 즐거워서 하루 종일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복을 받으려고 묵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즐거워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전부입니다.

묵상을 수단으로 삼으면 즐겁지 않습니다. 목적이 말씀 자체일 때 묵상은 즐거움이 됩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운 사람은 말씀과의 대화가 즐겁습니다. 억지로 채워야 하는 칸이 아니라 열고 싶은 문이 됩니다.

말씀 묵상의 핵심은 양이 아니라 즐거움입니다

많은 분이 말씀 묵상을 숙제처럼 합니다. 오늘 몇 장 읽었는지, QT 칸을 빠짐없이 채웠는지가 중요합니다. 양을 채우면 무언가 이루었다는 안도감이 옵니다. 그러나 시편 1편은 양을 말하지 않습니다. 즐거움을 말합니다.

즐거운 것은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좋아하는 음악은 틀어놓고 살고, 좋아하는 사람은 바빠도 만나게 됩니다. 말씀이 즐거운 사람은 묵상을 해야 한다고 다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스럽게 말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자발적인 즐거움의 표현입니다. 의무로는 주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것입니다. 말씀이 지금 즐겁습니까? 만약 즐겁지 않다면, 양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 말씀을 펼치는 이유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묵상이 힘든 이유가 게으름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말씀 앞에 앉았을 때 얻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쌓여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은혜, 오늘의 적용점, 오늘의 결단. 그것들이 앞서면 말씀을 읽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시냇가 나무의 비밀

시편 1편 3절은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에 비유합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나무는 열매를 맺으려고 물을 빨아들이지 않습니다. 나무가 물 곁에 있으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힙니다. 열매가 목적이 아닙니다. 물이 뿌리까지 닿는 것이 먼저입니다. 열매를 먼저 맺으려 하면 오히려 나무가 시듭니다.

예레미야 17장 7절과 8절에서 이 나무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시냇가 나무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그 물의 정체가 나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시냇가의 물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말씀이 즐거워지는 것은 내 노력이 아닙니다. 예수님 가까이 있는 결과입니다. 그 물 곁에 있으면 잎사귀는 마르지 않고 열매는 때를 좇아 맺힙니다.

말씀 묵상이 즐겁지 않다면

말씀 묵상이 즐겁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 하나입니다. 말씀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목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으려고, 기도 응답을 위해, 신앙이 성장해야 하니까. 이런 목적이 앞서면 말씀은 수단이 됩니다. 수단이 된 말씀은 즐겁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무언가 얻어내려는 목적으로 만나면 그 만남은 즐겁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즐거움은 목적이 사라질 때 옵니다. 말씀 자체가 좋아서, 하나님의 음성이 듣고 싶어서 펼치게 될 때 묵상은 즐거움이 됩니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질문 하나입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결과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 될 때 말씀을 읽는 자리가 달라집니다. 숙제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앉는 자리가 됩니다. 그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말씀 묵상이 삶을 바꾸는 방식

복 있는 사람은 묵상으로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순서가 다릅니다. 먼저 말씀이 즐거워지고, 그 말씀에 뿌리가 내려지고, 그러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힙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뭄이 와도, 더위가 와도 마르지 않습니다. 뿌리가 시냇가에 닿아있는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 묵상의 진짜 의미는 말씀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머무름이 삶을 바꿉니다. 나무가 물 곁에 있으면 저절로 자라듯이.

오늘 말씀 묵상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잠깐 멈추고 이 질문을 해보세요. 나는 말씀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나려 하고 있는가.

믿음의 본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읽어보세요. 말씀 묵상이 힘든 날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다면 위로 찬양 메들리 15곡도 들어보세요.

이 채널에서는 말씀의 본질과 신앙의 뿌리에 대해 계속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채널 구독으로 말씀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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