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오늘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내 믿음이 식은 건가?” 감동이 없으면 믿음이 약한 것 같고, 눈물이 나면 믿음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감정으로 재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믿음을 잘못 이해하면 신앙생활이 매일 흔들립니다. 어떤 날은 믿음이 가득한 것 같고, 어떤 날은 믿음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 불안정함의 원인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정의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 1절은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실상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단어는 휘포스타시스, 곧 아래에 서 있는 기초를 의미합니다. 믿음은 감정 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미 실재하는 것의 기초 위에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것이 이미 있음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로마서 10장 17절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내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오늘 감동이 없어도 말씀은 여전히 역사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믿음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예배와 말씀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하다고 느껴질 때 더 노력해서 믿음을 만들어내려 하는 것은 방향이 다릅니다.
감정을 믿음으로 착각할 때 생기는 일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는 것보다 사랑에 빠지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그 결과 사랑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감정으로 시작한 것은 감정이 사라지면 함께 끝납니다. 믿음도 같은 함정이 있습니다. 감동이 있을 때 믿음이 있다고 느끼고, 감동이 없을 때 믿음이 사라진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감정은 날씨와 같습니다. 피곤하면 달라지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달라집니다. 감정을 믿음의 기준으로 삼으면 신앙은 날씨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감정이 기준이 되면 감동을 위한 예배, 뜨거운 느낌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쫓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담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감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크기보다 믿음의 대상이 전부입니다
믿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의자에 앉을 때 우리는 의자가 내 몸무게를 지탱할 것이라는 확신을 증명하고 앉지 않습니다. 그냥 앉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확신의 크기가 아니라 의자의 견고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하나만한 믿음이라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마 17:20). 겨자씨는 작습니다. 그러나 대상이 하나님이시면 작은 믿음도 충분합니다. 믿음의 힘은 믿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요 19:30). 이 선언은 완료형입니다. 이미 완성된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받는 사람의 손이 크든 작든 선물은 같습니다.
파도를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의 뜻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마 14:28-30). 예수님을 바라볼 때 걸었고,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 가라앉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믿음의 크기가 아닙니다.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느냐입니다. 파도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파도는 있었지만 베드로는 걸었습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해야 할 것은 믿음을 더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시선을 예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이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이 기준이 아닙니다. 말씀이 기준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닙니다
많은 분이 의심이 드는 것을 믿음이 없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심과 불신은 다릅니다. 의심은 질문입니다. 불신은 거부입니다. 세례 요한도 감옥에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극한 상황 속에서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질문을 불신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으로 답하셨습니다. 의심이 들 때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대로 가져가면 됩니다. 흔들리면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 지금 이 자리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경의 답은 명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것을 말씀을 통해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감정이 아닙니다. 열심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감동이 없어도 됩니다. 눈물이 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이 이미 믿음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복 있는 사람은 복을 얻으려고 말씀 묵상을 하지 않습니다를 함께 읽어보세요. 지치고 힘든 날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싶다면 위로 찬양 메들리 15곡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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