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성령의 불을 다시구하는 1가지 기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벅찬 감격이 어디로 갔을까. 말씀 앞에 눈물이 흐르던 그 감동이, 기도할 때 느껴지던 그 떨림이, 주일이 기다려지던 그 설렘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기온은 날씨 앱으로 매일 확인하고, 시장의 온도는 뉴스로 매일 점검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의 온도는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식어가고, 십자가의 은혜는 익숙해지고, 말씀 앞에서 떨림을 잃어버린 지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사랑이 식어버린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기도를 드립니다.

처음 사랑 — 마음의 온도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성경을 펼치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기도하면 눈물이 흘렀습니다. 예배 시간이 기다려졌고,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은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갔습니다. 말씀을 읽었습니다. 기도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처음의 뜨거움이 없었습니다. 의무로 하고 있었습니다. 습관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온도가 낮아진 것을 모른 채 신앙의 형식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열심히 일했고, 거짓 사도를 분별했으며, 인내했습니다. 누가 봐도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적하신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행위의 양이 아닙니다. 마음의 온도입니다. 세상의 걱정과 염려는 커졌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면, 지금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의 처음 사랑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찬양을 불러도 감동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 것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힘든 시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일하고 계신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멈추신 것이 아닙니다. 씨앗이 땅속에서 발아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과정 동안 땅 위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땅 아래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이와 같습니다.

엘리야는 광야에서 쓰러져 죽기를 구했습니다.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먹이셨습니다. 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친 사람을 아십니다. 식어버린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느껴지는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향해 일하고 계십니다.

처음 사랑 —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달려가는 인생

우리의 인생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한번 떠난 화살은 멈추지 않습니다. 뒤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직 앞으로 날아갈 뿐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순간도 영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100년이 영원 앞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무엇에 쓰고 있습니까. 세상의 걱정과 염려에 대부분을 쏟고 있지는 않습니까.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붙잡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남은 시간을 헛되이 살지 않는다는 것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먼저의 순서가 바로 서야 합니다. 그 순서가 바로잡힐 때 나머지도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내 열심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서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열심과 행위에 기대는 때가 있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많이 헌신하고, 더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 쌓일수록 하나님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리에서 나의 수고를 드리는 자리로 조금씩 옮겨가게 됩니다.

복음은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흘리신 보혈은 처음 믿을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유효합니다. 마음이 식어버린 이 순간에도 그 은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내 감정이 달라져도 복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내 열심이 식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굳게 서야 할 곳은 내 의지와 열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령의 불이 다시 붙는 자리

식어버린 마음에 다시 불이 붙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이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가 피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더 솔직한 고백입니다.

내 마음이 식어버렸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익숙해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떨림을 잃어버렸음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처음 사랑은 처음의 감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나를 사랑하신 그분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서는 것입니다. 내 의가 아닌 그분의 은혜를 다시 붙드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식어버린 이 마음에 성령의 불을 다시 붙여 주시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하시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무너진 자리에 은혜 — 기도해도 허전한 3가지 이유

말씀 영상 채널 바로가기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벅참이 어디로 갔을까. 말씀 앞에 눈물이 흐르던 감동이, 기도할 때 느껴지던 그 떨림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온도는 매일 확인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의 온도는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처음 사랑이 식어버린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를 드립니다.

처음 사랑 — 마음의 온도를 잃어버린 날

날씨 앱을 열어 오늘의 기온을 확인합니다. 뉴스를 보며 세상의 온도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의 온도는 언제 마지막으로 확인했는지 모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식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성경을 펼치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기도하면 눈물이 흘렀습니다. 주일이 기다려졌고 이 은혜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불꽃이 사그라졌습니다. 신앙은 유지되고 있지만 처음 사랑의 온도가 낮아졌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익숙해지고, 말씀 앞에서 떨림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걱정은 커지는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조용해졌습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열심히 일했고 거짓 사도를 분별했으며 인내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적하신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입니다.

세상의 걱정과 염려는 커졌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돌아볼 때입니다. 처음 사랑은 처음의 감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나를 사랑하신 그분께로 다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 것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이 가장 힘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일하고 계신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멈추신 것이 아닙니다. 씨앗이 땅속에서 발아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없으면 꽃은 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에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음이 식어버린 그 자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처음 사랑은 뜨거운 감정만이 아닙니다.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손길을 믿는 것, 그것이 더 깊어진 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묵묵히 일하고 계십니다.

처음 사랑 —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달려가는 인생

우리의 인생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한번 떠난 화살은 멈추지 않습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인생의 100년이 영원 앞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습니다.

그렇다면 이 짧은 시간을 무엇에 쓰고 있습니까. 세상의 걱정과 염려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라질 것들을 붙잡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남은 시간을 헛되이 살지 않는다는 것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 열심이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흘리신 보혈,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 안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하루가 진짜 의미 있는 하루입니다.

성령의 불을 다시 구하며

식어버린 마음에 다시 불이 붙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이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 열심과 행위로는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가 피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솔직한 고백입니다. 내 마음이 식어버렸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흘리신 보혈은 처음 믿을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유효합니다. 내 감정이 달라졌어도 복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식어버린 이 순간에도 그 은혜는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식어버린 제 마음에 성령의 불을 다시 붙여 주시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하시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믿음 안에 굳게 서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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