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있다는 착각이 가장 위험하다_거듭남

착바르게 살면 됩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합니다.

니고데모는 누구인가 — 거듭남이 필요했던 사람

이스라엘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 최고 의회 산헤드린 70인 공회원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대법관과 종교 지도자를 겸한 사람입니다.

그가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낮에 올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 눈에 띄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율법을 다 지켰는데도, 공회원 자리에 앉았는데도, 뭔가 빠진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칭찬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칭찬에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대화를 이어가거나 감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곧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마디 — 거듭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첫 마디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이스라엘에서 가장 완벽한 종교인에게 던진 첫 마디가 이것이었습니다. 칭찬도, 격려도, 위로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종교적으로 완벽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직격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당황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거듭남을 물리적인 재탄생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인 탄생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육신의 태어남이 아니라, 위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종교 행위의 결말

그렇다면 거듭나지 않은 모든 종교 행위는 어떻게 됩니까?

새벽 기도도 했습니다. 봉사도 했습니다. 헌금도 했습니다. 착한 일도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거듭나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었고 율법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 하나에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완벽한 종교적 행위도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더 두려운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주여 주여 할 것입니다. 선지자 노릇도 했고 귀신도 쫓았고 권능까지 행했습니다. 봉사도 했고 헌신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거듭나지 않으면 내가 평생 바쳐온 모든 신앙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이 선택이 아닌 이유입니다. 구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광야의 놋뱀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어갔습니다. 독이 온몸에 퍼졌습니다.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 해독제를 만들거나 상처를 치료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노력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쳐다봤을 때 불뱀의 독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도 이와 같이 들려야 하리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죄가 사라집니다. 인간 편에서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바라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놋뱀을 보는 데 자격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십자가를 바라보는 데 자격을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바라보면 됩니다.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바라보면 됩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죄를 씻으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 에스겔 36장의 예언

에스겔 36장에 예언이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600년 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 정결케 하고 내 영을 너희 속에 두겠다.”

물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은 선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이 직접 죄를 씻어 주십니다. 성령은 새 마음입니다. 죄가 씻겨진 마음에 성령이 오셔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에스겔 36장 전체의 주어는 단 하나입니다. “내가 하겠다”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물을 뿌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영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거듭남은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내가 노력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회개했다고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눈물을 흘렸다고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죄를 씻으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 십자가 앞에서

이것은 내가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믿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이 죄를 씻으시고 성령이 새 마음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죄에 매여 있다면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내 노력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변화가 옵니다. 예전에 좋아하던 죄가 더 이상 즐겁지 않아집니다. 예전에 무거웠던 말씀이 생명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의무로 했던 기도가 필요로 바뀝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마음이 주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이 말씀 앞에 오늘 서십시오. 종교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십시오. 거듭남은 자격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거듭남과 믿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더 알고 싶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세요. 거듭난 자가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복 있는 사람은 복을 얻으려고 말씀 묵상을 하지 않습니다에서 이어집니다. 지치고 힘든 날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다면 위로 찬양 메들리 15곡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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