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창세기 43장 야곱

신앙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면,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했고, 벧엘에서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고통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버텼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요셉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믿음이 없어서 고통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43장의 야곱은 이상합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그는 떨고 있습니다. 버티고 있습니다. 베냐민만은 절대 보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믿음이 부족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야곱이 몰랐던 것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마음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년이 넘도록 그렇게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 앞에 나타났습니다. 요셉이 무엇을 원하는지, 야곱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몰랐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고통의 뿌리였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야곱처럼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이 지금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그 불확실함이 두려움을 만들고, 두려움이 손을 꽉 쥐게 합니다. 신앙의 고통은 대부분 여기서 시작됩니다.

조금씩 받아 쓰는 신앙의 함정

야곱의 신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양식이 떨어지면 요셉에게 간다. 조금 받아다가 버틴다. 또 떨어지면 또 간다.

이것이 잘못된 신앙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신앙의 고통이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근은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양식은 또 떨어졌습니다. 두려움은 더 깊어졌습니다. 기근이 해결되어야 평안해지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기근은 언제나 다시 옵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쉬는 신앙은 결코 쉬지 못합니다. 해결과 해결 사이의 간격이 두려움의 시간이 됩니다.

많은 분들의 신앙이 야곱과 비슷합니다. 힘들 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기도합니다. 조금 나아지면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또 힘들어지면 또 나아갑니다. 이것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됐는데도 지칩니다. 믿음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원한 것은 야곱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과 온 가족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받아 쓰는 삶이 아니라, 은혜의 바다 안으로 들어오는 삶이었습니다. 야곱이 그 마음을 알았더라면 단 하루도 고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식이 떨어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셉 곁에 있으면 됐으니까요.

주님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 전체를 주님 자신에게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이 힘들 때 느끼는 공허함은 여기서 옵니다. 주님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대할 때 마음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잃으면 잃으리로다 — 참된 믿음의 순간

창세기 43장 14절에 야곱의 한 마디가 나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야곱은 오래 버텼습니다. 베냐민만은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이미 잃었습니다. 시몬도 잡혀갔습니다. 베냐민마저 보내면 자기에게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손이 꽉 쥐어진 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행복의 마지막을 지키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요셉은 잃었다. 시몬도 잃었다. 이 아이마저 잃으면 나는 끝이다. 그 소리가 손을 더 꽉 쥐게 만들었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려고 버티는 동안 기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쥐고 있으면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 손이 야곱을 더 깊은 고통 안으로 몰아갔습니다.

마침내 야곱이 그 손을 놓았습니다.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더 열심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행복을 자기가 지키겠다는 마음을 하나님 손에 내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념이 아닙니다. 포기도 아닙니다. 요셉의 마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베냐민을 지키지 않아도 요셉이 지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순간 은혜의 바다가 시작됐습니다. 베냐민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을 다시 만났습니다. 온 가족이 고센 땅에 정착했습니다. 조금씩 받아 쓰는 삶이 끝나고, 은혜의 바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당신의 베냐민은 무엇입니까

지금 당신에게도 베냐민이 있을 것입니다. 절대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놓으면 끝이라고 느끼는 것. 그것이 건강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꽉 쥐면 쥘수록 두려움은 깊어지고, 신앙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은혜의 바다 안으로 들어간 야곱은 더 이상 양식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요셉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받아 버티는 삶이 끝났습니다. 당신도 그렇습니다. 주님 안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당신의 전부가 되십니다.

그 고통이 끝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조금씩 돕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 전체를 주님 자신에게로 이끄십니다. 내 손을 놓으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은 야곱의 이야기가 증명합니다. 지금 꽉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주님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것이 은혜의 바다의 시작입니다. 더 많은 말씀이 궁금하시다면 유튜브 채널에서 만나보세요.신앙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면,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했고, 벧엘에서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고통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버텼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요셉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믿음이 없어서 고통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43장의 야곱은 이상합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그는 떨고 있습니다. 버티고 있습니다. 베냐민만은 절대 보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믿음이 부족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야곱이 몰랐던 것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마음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년이 넘도록 그렇게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 앞에 나타났습니다. 요셉이 무엇을 원하는지, 야곱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몰랐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고통의 뿌리였습니다.

모르면 두렵습니다. 모르면 고통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고통은 대부분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모릅니다.

조금씩 받아 쓰는 신앙의 함정

야곱의 신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양식이 떨어지면 요셉에게 간다. 조금 받아다가 버틴다. 또 떨어지면 또 간다.

이것이 잘못된 신앙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신앙의 고통이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근은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양식은 또 떨어졌습니다. 두려움은 더 깊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신앙이 야곱과 비슷합니다. 힘들 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기도합니다. 조금 나아지면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또 힘들어지면 또 나아갑니다. 이것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됐는데도 지칩니다. 믿음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원한 것은 야곱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과 온 가족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받아 쓰는 삶이 아니라, 은혜의 바다 안으로 들어오는 삶이었습니다. 야곱이 그 마음을 알았더라면 단 하루도 고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식이 떨어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요셉 곁에 있으면 됐으니까요.

주님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 전체를 주님 자신에게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이 힘들 때 느끼는 공허함은 여기서 옵니다. 주님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대할 때 마음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잃으면 잃으리로다 — 참된 믿음의 순간

창세기 43장 14절에 야곱의 한 마디가 나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야곱은 오래 버텼습니다. 베냐민만은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이미 잃었습니다. 시몬도 잡혀갔습니다. 베냐민마저 보내면 자기에게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손이 꽉 쥐어진 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행복의 마지막을 지키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요셉은 잃었다. 시몬도 잃었다. 이 아이마저 잃으면 나는 끝이다. 그 소리가 손을 더 꽉 쥐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이 꽉 쥐어질수록 고통은 더 깊어졌습니다.

마침내 야곱이 그 손을 놓았습니다. “잃으면 잃으리로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더 열심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행복을 자기가 지키겠다는 마음을 하나님 손에 내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념이 아닙니다. 포기도 아닙니다. 요셉의 마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베냐민을 지키지 않아도 요셉이 지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순간 은혜의 바다가 시작됐습니다. 베냐민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을 다시 만났습니다. 온 가족이 고센 땅에 정착했습니다. 조금씩 받아 쓰는 삶이 끝나고, 은혜의 바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야곱의 손이 펴진 그 순간이 전환점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베냐민은 무엇입니까

지금 당신에게도 베냐민이 있을 것입니다. 절대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놓으면 끝이라고 느끼는 것. 그것이 건강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꽉 쥐면 쥘수록 두려움은 깊어지고, 신앙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 고통이 끝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조금씩 돕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 전체를 주님 자신에게로 이끄십니다. 그것이 처음부터 주님이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내 손을 놓으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은 야곱의 이야기가 증명합니다. 지금 꽉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주님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것이 은혜의 바다의 시작입니다. 더 많은 말씀이 궁금하시다면 유튜브 채널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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