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찬양 모음은 계획하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 서다가, 기도하다가, 무너지다가 — 그 자리마다 흘러나온 노래들이 하나로 모였습니다. 12곡입니다. 시작은 “그 빈 자리 — 주님이 앉으셨네”이고, 끝은 “믿음은 별처럼”입니다. 그 사이에 무너짐이 있고, 잠잠함이 있고, 달리다굼이 있고, 할렐루야가 있습니다. 한 곡 한 곡이 독립된 노래지만, 들어보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집니다. 신앙의 여정이 그렇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 찬양모음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
찬양은 때로 설명보다 먼저 옵니다. 말씀을 다 이해하기 전에, 기도가 완성되기 전에 — 먼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 찬양 모음의 12곡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 그 순간마다 흘러나온 고백들이 하나로 모였습니다.
“그 빈 자리 — 주님이 앉으셨네”는 이 찬양 모음의 첫 고백입니다. 내가 오래 앉아 있던 그 자리, 내 판단과 내 기준으로 채웠던 그 자리를 비웠을 때 주님이 앉으셨습니다. 그 자리를 비우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운 순간, 비로소 쉬었습니다. 그 빈 자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노래의 첫 소절에서 멈추게 됩니다.
“은혜의 강가에서”는 그 다음입니다. 자리를 비운 사람이 처음 서게 되는 곳이 은혜의 강가입니다. 내 힘으로 찾아간 곳이 아닙니다. 발을 내딛었더니 이미 그곳이었습니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로다”는 에스더의 고백입니다.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자리이지만,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로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잃을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는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마가복음 4장 39절). 이 곡은 바다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내 안의 폭풍 앞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두려움이 일어날 때, 생각이 겹칠 때, 그 폭풍을 향해 말씀이 임합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폭풍이 멈추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닙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이 찬양 모음 안에서 이 곡은 전반부의 마침표입니다.
찬양 모음 12곡이 하나로 흐르다
“달리다굼”은 야이로의 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마가복음 5장 41절). 소녀야 일어나라. 이 찬양 모음 한가운데 이 곡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서, 그분은 아직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포기하고 싶을 때,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 같을 때, 이 말씀이 들립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주의 마음이 흐르게 하소서”는 일어난 자리에서 드리는 간구입니다.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이 흘러야 합니다. 내 감정, 내 기준, 내 판단이 아니라 주의 마음이 이 자리를 채워주시기를 구하는 노래입니다. “말씀 앞에 나는 무너져야 해”는 패배가 아닙니다. 올바른 무너짐입니다. 말씀 앞에 무너질 때 비로소 은혜가 들어옵니다. 강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무너질 때 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너진 자리에서 올려다보는 노래입니다. 내가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약속이, 무릎을 꿇으면 보입니다. “무너진 그 자리”는 그 자리가 끝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무너진 자리는 그분이 다시 세우시는 자리입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할렐루야” — 이 한 단어가 모든 것을 덮습니다. 기쁠 때만 부르는 할렐루야가 아닙니다. 무너지고, 잠잠해지고, 일어나고, 다시 약속을 붙든 자가 부르는 할렐루야입니다. 그래서 이 찬양모음 안에서 할렐루야는 감탄이 아니라 신앙 고백입니다. “물결처럼 깊은 곳에서” —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누가복음 5장 4절). 찬양도 깊은 곳에서 건져올린 것입니다. 얕은 곳에서 나온 찬양은 얕게 울립니다. “믿음은 별처럼”으로 이 찬양 모음은 닫힙니다. 어두울수록 별이 빛납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어두운 시간이 깊을수록, 믿음은 더 선명하게 빛납니다.
찬양은 감정이 아니라 고백입니다
이 12곡을 들으면서 어떤 분은 울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무 감정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찬양은 감정이 충만할 때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따라오지 않아도, 입술을 여는 것 자체가 찬양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시편 42편 5절)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낙망한 영혼이 낙망한 채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른 것이 시편입니다. 완벽한 감정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입술을 열었습니다. 그것이 찬양이었습니다. 이 찬양모음의 12곡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기쁨에서만 나온 것이 아닙니다. 무너짐에서, 두려움에서, 기다림에서 나왔습니다.
이 찬양모음을 억지로 들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틀어두십시오. 설거지하면서, 운전하면서, 새벽에 잠 못 이루면서. 어느 순간 한 곡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 곡이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노래입니다. 찬양이 나오지 않는 날에도, 이 찬양모음이 대신 흘러줄 것입니다.
이 찬양모음은 완벽한 신앙인을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무너지고, 잠잠해지고, 다시 일어서는 — 그 모든 자리에 있는 사람을 위한 노래입니다. 그 빈 자리에 주님이 앉으셨고, 그 믿음은 오늘도 별처럼 빛납니다. 오늘 당신이 어떤 자리에 있든, 이 찬양모음이 그 자리에서 함께 흐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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